반기문 UN사무총장 재선 축하 통화 관련 브리핑
이명박 대통령은 연임이 된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 축하 전화를 했습니다.
통화는 집무실에서 10시부터 약 7분 간 진행이 됐습니다.
대통령은 통화에서 “지난 임기동안 보여준 반 총장의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를 세계 모든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고 전폭 지지한 결과이다. 선진국 정상들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 정상들이 특히 반 총장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시해 주어서 매우 자랑스러웠다. 국민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은 “대통령님과 국민모두의 성원과 격려에 감사하다. 회원국 모두가 만장일치로 지지해 주었다.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지는데 기여했다는 생각에 감격스럽다.”라고 했습니다.
앞서서 대통령은 반기문 UN사무총장 연임에 지지해 준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정상들에게 친서를 보냈습니다.
친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4년 반 동안 국제평화, 안보, 개발,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사회가 당면한 여러 도전에 열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해온 반 총장의 탁월한 리더십을 국제사회가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 총장의 출신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반 총장의 재선을 적극 지지해 주신 귀국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도 UN회원국으로서 앞으로도 UN의 이상과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데 귀 국과 함께 적극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2011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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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선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이 21일 유엔총회에서 유엔 헌장 원본에 손을 얹고 조지프 데이스
유엔총회 의장 앞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 Arrangement:
반기문 그는 누구인가?
반기문(潘基文, 1944년 6월 13일~)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국제 연합(UN)의 사무 총장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 33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고, 2006년 말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어 2007년부터 업무를 시작, 현재 재임중이다.
약력
일제 강점기 말이었던 1944년에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으며, 충주중학교와 충주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충주고등학교 재학시절 미국에 가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일로 인해 외교관의 꿈을 품게 되었다. 1970년 2월에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외무고시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3월에 정부 부처인 외무부(현 외교통상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자녀로 두고 있고,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 능통하며,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도 구사한다.
충주고등학교 시절에는 VISTA프로그램에 충청도 대표로 자동 선발되어 1등으로 시험을 마치고 다른 학생 3명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
[편집] 외교관 경력
1970년 외무부 여권과, 1972년 주 인도대사관 부영사, 1974년 주 인도대사관 2등 서기관 등을 지냈고, 주로 국제 조직을 거쳐 1980년 외무부 국제조직조약국 과장이 되었다.
외무부 지원으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85년 4월에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4월 총리 의전비서관, 1987년 7월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 1992년 9월 주미 공사, 1995년 2월 외무부 외교정책실장과 차관보를 역임했다. 1996년 11월에는 김영삼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으로 지냈다.
2000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지내다가 2001년엔 불미스러운 일로 외교통상부 차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9월 동 본부 대사, 2003년 2월에 참여정부의 외교정책보좌관을 지냈으며, 2004년 1월에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년에 2차례나 승진을 하는 등 외교부의 전설로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반의 반만해라"는 말이 옛날에 돌았다고 한다.
[편집] 국제 연합 사무총장
2006년 2월 14일에 국제 연합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여 2006년 10월 14일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코피 아난의 뒤를 잇는 차기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엔 그의 당선을 예상한 외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8대 유엔사무총장을 뽑는 1차 예비투표에서 그는 15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중 13개국의 찬성을 받아 1위에 오르게 되고 2차, 3차 투표에서 역시 각각 14표, 13표를 얻으며 안보리의 확고한 지지를 확인 받게 된다. 마지막 4차 투표에서 그는 7명의 후보를 제치고 안보리 15개국중 14개국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차이로 8대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특히 선거가 진행되는동안 중동, 아프리카 국가의 그에 대한 지지는 대단하였으며 투표 내내 그를 따라다녔던 몇안되는 기권표와 반대표가 일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2007년 2월 6일 국제 연합 총회장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그는 비대해진 국제 연합 평화 유지 활동국(DPKO)을 업무별로 2개 부서로 분리하고 군축 부서를 사무총장 직속에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제 연합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또 기구 개편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편집] 직인
반기문은 삼족오가 새겨진 사무총장 직인을 증정받아 사용하고 있다. 한국 전각의 대표적 명인 정병례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의 의뢰로 작업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인 2006년 12월 11일 완성한 직육면체의 직인은 가로·세로 7cm에 높이 18.5cm 크기로 삼족오를 주제로 제작되었다. [1][2]
밑바닥에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날개짓을 하는 삼족오와 이글거리는 태양을 배경으로 ‘Ban Ki-moon Secretary-General The United Nations→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라는 문구가 있다. 옆면 4곳에는 삼족오와 태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삼족오 직인은 2007년 1월 12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3회 한국 이미지 디딤돌상 수상식에서 그 제작자를 수상자로 선정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