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고 싶다(다니엘 1장 8~9절)

by 칼뱅이 posted Aug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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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싶다(다니엘 1장 8~9절)

나라가 망하고 많은 사람이 적국으로 끌려갔다면 ‘끝났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이 포로 가운데 4명의 젊은이를 주목하고 인도했다면 하나님 나라 역사는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서가 전하는 비전이고 교훈입니다.

한때 유대인은 자기 왕국이 세계사의 중심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들만의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고 오랜 세월 나라 없이 떠돌다 보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넓고 자기들은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한편으로 유대 민족을 둘러싼 힘센 제국들이 넘어지면 약속된 해방과 회복을 누리게 될 줄 알았습니다. 자기들이 일군 승리가 아니어도 말입니다.

어쨌든 제국이 잇달아 서고 넘어지는 역사를 보며 유대인은 하나님과 민족의 고난을 이해하는데 더 성숙한 관점을 갖게 됩니다.

우선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갖게 됩니다.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나 주님 노릇 할 만큼은 못 된다는 걸 진즉 알았지만, 그렇다고 큰 제국이나 발달한 문명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서고 찬양을 받을 때까지 선민 된 민족의 사명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희망과 그 희망을 이룰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예언자적 사명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배 세력은 이를 불온하게 보고 박해를 가합니다. 고난을 못 견디고 현실과 타협하는 이들도 나왔습니다. 깨달음과 위기는 이렇게 같이 왔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차용한 방식이 ‘묵시 문학적 예언 활동’입니다.

다니엘이나 계시록처럼 이야기와 비유, 숫자와 상징을 사용해, 한편으론 현실 권력에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희망을 선포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이런 희망을 품도록 하나님을 믿는 이를 격려합니다. 이런 형식의 예언 활동을 ‘묵시 문학적’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묵시 문학적 예언 활동에 가장 적절한 경우가 다니엘 같은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 곧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적국의 포로가 돼 이름마저 빼앗기는 고초를 겪습니다. 이들은 이를 꿋꿋이 이겨내며 믿음을 지켰고 하나님의 이름도 높입니다.

이들이 ‘성공하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망에 끌렸다면 좌절하거나 변절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거룩하고 싶다’였습니다.

그렇다고 반세속주의자나 신비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벨론에서도 인정받는 지도자가 됩니다. 다만 자기 중심을 하나님께만 두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세상 나라의 시민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영적 긴장감을 다니엘과 친구들이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 시작은 ‘거룩하고 싶다’는 뜻을 정하는 일입니다.

기도 : 주님, ‘거룩하고 싶다’는 뜻을 정한 성도를 다니엘처럼 인도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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