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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더는 적대 안돼, 평화의 길 열어가야”

북한 도발 관련 교계 성명 잇달아 “한국교회, 화해의 일꾼으로 헌신”

폭파 등 남북관계의 시련 앞에서도 한국교회는 평화의 길을 선도해야 한다는 성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6·25전쟁 70년을 맞아 더 이상의 무력 대응과 적대 정책은 허용될 수 없으며, 평화적 수단으로 파국을 극복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김태영 류정호 문수석 목사)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로 가는 대로를 닦자’란 제목의 6·25 70주년 성명을 발표했다.
한교총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잠시 보이던 평화의 그림자가 다시 냉기류에 휩싸이고 있다”면서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와 거친 언사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평화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교총은 “한국교회는 시민사회와 연대해 무력과 대결을 통한 적대시 정책을 거부하며, 평화의 길을 열어 가는 데 헌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권태진 목사)도 성명을 통해 “곧 6·25전쟁 70주년이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서
“북한의 도발에 유비무환의 자세로 똘똘 뭉쳐 한미동맹과 안보태세로 대응해 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이홍정 목사) 화해통일위원회는 18일 오후 긴급시국회의를 개최하고 ‘현 남북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화해통일위는 “4·27 판문점선언으로 어렵게 시작된 남북화해와 협력의 관계가 물리적 폭력을 통한 강 대 강의 적대 관계로 전환되는 것을 심히 우려한다”면서
“무력도발 불용이라는 6·15 공동선언의 원칙에 따라 모든 강경 대응을 자제하고, 평화적 수단으로 파국을 극복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NCCK 신학위원회는 앞서 ‘한국전쟁 70년 한국기독교회 평화 호소문’을 발표했다.
신학위는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시 34:14, 공동번역) 말씀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모든 전쟁행위의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는 점에서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남북 간의 군사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학위는 “한국교회가 분단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헌신하는 평화와 화해의 일꾼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세계교회와 국내외 종교시민사회가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성규 임보혁 최기영 기자 mainport@kmib.co.kr 입력 : 2020-06-19 00:03
 
6.25 사변과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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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사라지고 한국전쟁이 득세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당시 한국 언론들은 북한의 남침을 '괴뢰 남침'이라 했다.

이후 전쟁의 전모가 파악되면서 괴뢰 남침을 6.25 동란(動亂)이라 불렀다. 때에 따라 6.25 사변, 6.25 남침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6.25만은 꼭 따라 다녔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6.25를 지칭하는 용어는 ‘6.25동란’ → ‘6.25사변’ → ‘6.25남침’ → ‘6.25전쟁’ 으로 바뀌어왔다.

현재 사용하는 공식 용어는 6.25전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은 또다시 한국전쟁에 밀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려 한다.

왜 6.25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붙었으며 이젠 6.25라는 용어조차 사라지려하는 걸까

전쟁은 국가간 무력 충돌을 일컫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400여 년 전 일본과 조선, 명나라가 치열하게 한반도에서 벌였던 전쟁도 우리 역사는 국가간 전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임진왜란이라 한다.

임진년(1592년)에 왜놈들이 이 땅에서 난(亂)을 일으켰다는 의미다.

청나라의 조선침략도 정묘호란, 병자호란이라 한다.

명백한 국가간 전쟁을 굳이 난(亂)이라 칭하는 것은 침략자를 비하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따르면 38선 이북도 대한민국의 영토다.

따라서 북한의 남침에 의해 시작된 6.25는 국가간 전쟁이라 볼 수 없다.

역사적 선례에 비춰볼 때 변(變)이나 난(亂)에 가깝다.

따라서 동란(動亂)이나 사변(事變)이 6.25 전쟁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용어다.

학술과 역사 분야의 용어를 선례에 한정해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6.25 동란이나 6.25 사변으로 널리 사용되던 말을 굳이 6. 25 전쟁으로 바꾸더니 이젠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이유와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6.25 전쟁의 영문명은 Korean War다. 이를 최초로 보도한 외국 기자는 UP 통신의 잭 제임스 기자였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오전 9시 50분 전쟁 발발 기사를 본사에 타전했다. 제임스의 1보는 AP 기사보다 2시간이나 빨랐으며 무초 주한 미대사가 본국에 타전한 보고보다도 빨랐다고 한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을 Korean War라 불렀다. 그러나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휴전협정문 어디에도 Korean War는 보이지 않는다. 협정문 타이틀은 KOREAN ARMISTICE AGREEMENT다. 굳이 해석하자면 '한국정전협정'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War(전쟁)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고 Conflict를 사용하여 6.25를 'Korean Conflict'라고 명시함으로써 전쟁의 성격을 '충돌'로 규정했다.

6.25 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은 각자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용어를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대한민국은 동란, 사변, 남침이라 하다.

이젠 '6.25 전쟁'이 되었다. 북한은 '조국인민해방전쟁',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Korean War', 소련은 'Корейская Bойна', 중국은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혹은 '조선전쟁'이라 부른다.

각자 자신들의 대의명분에 따라 전쟁의 성격을 함축하는 명칭을 쓴다. 어쨌든 법적 효력을 지닌 휴전협정문에는 6.25를 'Korean Conflict'로 결정했다.

수 년을 끌었던 휴전협상은 지난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협상에 참여했던 챨스 터너 조이(Charles Turner Joy) 미해군 중장은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 Negotiate)'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공산측은 똑같은 발언, 똑같은 주장을 이전에 끝없이 사용하던 그대로 토해낸다.

~ 똑같이 되풀이되는 공허한 주장을 그렇게 오랫동안 들어야 하는 지루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챨스 터너 조이는

그의 저서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휴전협상 과정에서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부분, 즉 전쟁 명칭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시간을 공산측과 씨름했을 것으로 본다.

3년 동안이나 치열하게 전개된 6.25는 공산진영의 북한과 소련, 중국이 개입했고 자유진영의 대한민국과 미국등 16개 나라의 UN군이 참전한 국제전쟁이었다.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쟁이 남긴 상흔은 헤아릴 수조차 없이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 협정문에는 'Korean Conflict'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Conflict 가 War가 되면 전쟁 책임자가 부각되고 전후처리 문제가 복잡해진다. 때문에 서로 다툰다는 의미를 가진 Conflict를 사용했을 것이다.

'6.25 사변'이 '6.25 전쟁'을 거쳐 '한국전쟁'이 된 것은 미국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1981)의 영향이 컸다. 그에 따르면 1948년 남북한에 각각 정부가 수립된 이후 38선을 따라 소규모 국지전이 빈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는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이미 내전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커밍스 교수는 김일성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여 남침했다는 사실도 의심한다. 이같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좌파 진영과 학계,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커밍스 교수는 6.25는 계획된 김일성의 침략이 아니라 북한이 남침하도록 미국이 유도했다는 주장까지 편다.

한동안 커밍스의 주장은 비판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비밀 문서가 해제되면서 커밍스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결국 커밍스 교수는 기존의 6. 25 전쟁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여 The Korean War: A History (2011)라는 책을 냈다.

그 저서에서 커밍스 교수는 6.25가 북한 김일성의 남침이 확실하다고 적음으로써 기존의 주장을 번복했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6.25 사변이 6.25 전쟁을 거쳐 한국전쟁으로 굳어진 후였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을 그것이 일어난 시점에 맞춰 부른다. 1.21 사태, 2.8 독립선언, 3.1 절, 4.3 사태, 4.19 의거, 5.16 군사혁명, 5.17 비상계엄 확대, 5.18 광주사태, 6.3 사태, 6.23 선언, 8.15, 9.28 수복, 10.26, 12.12 등 그야말로 이루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다. 역사적인 사건은 그 경위야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지만 언제 발생했느냐도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6.25 동란, 사변은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이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킬 목적으로 기습 남침한 사건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유엔연설에서 6.25를 "내전이자 국제전"이라 말했다.

부루스 커밍스도 잘못을 인정한 옛날 책에 적힌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문대통령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6.25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전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6.25 사변이나 6.25 전쟁이라는 용어보다는 6.25가 빠진 한국전쟁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커밍스 교수의 수정주의적 주장이 인기를 끌었다.

분단 직후부터 38선 전역에서 국지전이 빈발했고, 남북간에 서로 무력 통일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발발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진실처럼 퍼져 나갔다.

게다가 6.25 전쟁의 영문 명칭이 Korean War 였기 때문에 국제적 학술 교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6.25 전쟁은 한국전쟁이 되었다.

6.25 전쟁이 한국전쟁이 됨으로써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전쟁 책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부분이 흐려졌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한국전쟁이라는 말 속에는 전쟁의 성격과 전쟁 책임자를 은폐하는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6.25에 대해 대국민 설문을 해본 결과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2015년 6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은 예상대로다. 응답자의 약 40%가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전쟁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응답은 87%였다. 그러나 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결과이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결과는 참혹하다.

2013년 시사저널이 중,고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한국역사에 관심없다 43%, 관심있다 54%, 한국역사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한 학생이 51%였다.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74%였다.

역사 교육은 필요하다고 인정하지만 역사는 잘 모른다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한 때 고교생의 69%가 6.25는 '북침'이라는 결과가 나와 우리 청소년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떠들썩하기는 했지만 '북침', '남침'이라는 용어의 혼란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전적 의미로 북침은 북쪽으로 침공한다. 남침은 남쪽으로 침공한다는 뜻이지만 학생들은 북침을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자교육을 폐지한 폐해가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우리말은 대부분 한자로 만들어진 것이 많기 때문에 한자를 모르는 청소년들은 개념 정리가 안되는 경향이 있다.

한자 교육에 대한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앉게 되면 맨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제자의 질문에 말을 바로 잡겠다(必也正名乎)고 했다.

이를 공자의 정명사상이라 한다.

말은 인간의 관념을 지배한다. 말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본질이 왜곡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는 친일잔재라고 했는데 이는 확실하게 검증된 것이 아니다.

빨갱이를 영어권에서는 Reds라 하고 일본에서는 아카(アカ)라 한다.

Communist와 달리 Reds는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뜻이 강하다.

6.25 동란 발발 직후 Los Angeles Times는 "REDS INVADING KOREA"라고 대서특필했다.

번역하면 '빨갱이들이 한국을 침략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속어이지 일제의 잔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빨갱이를 일재의 잔재라 억지 주장하면서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면 공산주의자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다.

공산주의자를 비하해서 Reds, 아카(アカ)라고 했듯이 빨갱이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이다.

6.25 전쟁을 한국전쟁이라 칭하는 것은 명백하게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이 있고 그들이 핵을 개발하여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시기상조다.

매번 자유우파는 용어 선점에서 좌파들에게 밀린다.

말, 용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세력이 어떤 용어가 갖고 있는 뉴앙스를 선점해버리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과 같다. 좋은 말을 선점하는 세력에게 대중은 끌려가기 마련이다.

진보, 정의, 양심, 사람사는 세상, 평등, 공정, 분배, 차별 없는 세상.... 이런 단어를 선점해서 상대방을 반대쪽에 놓고 공격하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대한민국의 자유우파는 그동안 용어전술, 말장난에 무력하게 당해왔다. 곧 6.25 전쟁 69주년이 돌아온다.

2018년에는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도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6.25는 6.25로 남아야 한다.

6.25 사변은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이 스탈린과 공모하고 모택동의 지원 확약을 받은 후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한 침략 행위였다.

 

6.25 사변이라는 말에는 전쟁의 성격과 책임자를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다시 6.25 사변으로 되돌리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전쟁의 성격에 대해서만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의 자녀, 손자, 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역사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대해 알려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라고 말한 토머스 제퍼슨의 말은

 

올바른 역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있다.

 

이자세 2019. 6. 9. 15:03  [출처] 6.25 사변과 한국전쟁|작성자 이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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